작가가 글을 쓴 주변환경의 모습들은 60년대와 70년대, 그시절을 느끼며 살아온 본인을 포함한 40대 이상의 연령층들에겐 너무도 또렷한 ‘그때 그시절’이다.
5.16혁명이후 산업화, 근대화가 시작되던 60년대의 우리나라는 전 인구의 90%가 하루세끼중 최소한 한끼라도 편치 않았다고 하는 통계가 있을만큼 가난했던 시절이고 인건비의 개념이 도통 없던 시절이다. 밥만 먹여주면… 무엇이든 하던 시절이었다.
가족 계획의 개념이 없던 농촌엔 흔히 6,7남매의 자녀를 둔 가난한 가정이 보통이었고 남존여비, 남아선호가 더욱 심했던 그시절의 이들 농촌 중산층 가정의 딸들은 버스차장으로, 입주 가정부로, 구로공단의 신발, 가발 공장으로.. 밀려 밀려 갔다.
이런 연유로 서울의 웬만한 가정에선 가정부 하나 안둔 집이 없었고.. 많은 집들은 식모, 보모 등 둘이상의 입주가정부를 두고 살았다. 그시절의 봉순이는 너무도 흔히 주변에서 보던 가정부 그대로의 모습이다.
물론 사연은 각각 다르고 인성도 달랐지만.. 당시 서울의 중산층이상이 사는 골목골목 집집마다 봉순이와 같은 농촌여자 아이들이 가정부의 이름으로 살고 있었고 동네의 석유가게나, 세탁소 혹은 연탄가게엔 병식이 같은 출신의 불량(?)청년들이 봉순이와 같은 처지의 상대들과 사연들을 만들어내고 야반도주 하고 했던 것이다.
이제는 병식이도 봉순이도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훨씬더 부가 가치있고 고용가치 있는 일자리를 찾아 서울의 중산층 골목을 떠나갔지만.. 봉순이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짱아의 모습을 보면서 서울 중산층출신의 현재의 40대의 살아온 모습을 보는 듯하다.